지금의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가 되기까지 - 닷사이, 쿠보타, 핫카이산

지금의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가 되기까지 - 닷사이, 쿠보타, 핫카이산

2026/09/11 SAKEMURA-3 0 댓글

오늘 소개해드릴 브랜드는 사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사케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한 이름들입니다.

바로 닷사이(獺祭), 쿠보타(久保田), 핫카이산(八海山)입니다.

매우 유명한 이 브랜드들이 과연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닷사이(獺祭)

닷사이를 만든 곳은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산골짜기에 자리한 아사히 주조(旭酒造)입니다.

정확히는 2025년 6월부터 회사 이름 자체를 주식회사 닷사이(株式会社獺祭)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술 이름뿐만 아니라 회사 이름까지 닷사이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아사히 주조는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나가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아사히후지(旭富士)라는 지역용 대중주를 주력으로 만들던,
이와쿠니에서도 판매 순위 4위 정도에 머물던 작은 주조장이었습니다.

모두가 아는 니혼슈, 지금의 닷사이를 만든 인물은
3대 당주 사쿠라이 히로시(桜井博志) 회장입니다.

사쿠라이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다른 주조 회사에서 먼저 경험을 쌓고,
1976년 아사히 주조에 들어왔지만 경영 방향을 두고 아버지와 크게 충돌하면서
결국 약 2년 만에 회사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후에는 사실상 의절 상태로 석재 도매업을 하며 아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는데,
1984년 아버지로부터 뒤를 이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암이 발견됐고,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사쿠라이씨가 3대 사장 자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막상 돌아와보니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사히 주조의 매출은 전년의 85%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고,
10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였습니다.

그렇다고 생산량도 유통망도 훨씬 큰 대형 주조장들과 가격으로 맞붙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사쿠라이 회장은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싸게 팔아서는 어차피 대형 주조장을 이길 수 없으니,
가격이 아니라 술의 품질 자체로 승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사히 주조는 당시에는 상품화도 쉽지 않았던 준마이다이긴죠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1990년 드디어 준마이다이긴죠 닷사이(獺祭)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닷사이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년 뒤인 1992년, 처음에는 정미율 25%짜리 술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주조장에서 24%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사쿠라이 회장은 "그럼 우리는 23%까지 깎자"라고 결정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도 닷사이를 대표하는
닷사이 준마이다이긴죠 미가키 니와리산부(獺祭 純米大吟醸 磨き二割三分)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닷사이23이라고 부릅니다.)

야마다니시키를 23%만 남기도록 정미한 당시 최고 수준의 준마이다이긴죠였고,
이 제품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닷사이의 이름도 점점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이었던 것이 도쿄 진출입니다.
지역 시장에서는 이미 밀려나고 있었기에,
사쿠라이 회장은 닷사이 탄생 이전부터 더 큰 도쿄 시장을 노렸습니다.

직접 음식점과 주류점을 찾아다니며 판매처를 조금씩 넓혀갔고,
훗날 지역 주민들이 왜 오랫동안 마시던 아사히후지를 그만 만들었냐고 불평했을 때,
사쿠라이 회장이 회고한 이유는 "지역에서 안 팔렸으니까 그만뒀다"였습니다.

결국 아사히후지는 2000년대 초반 생산이 끝나고,
회사는 완전히 닷사이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닷사이는 세계로 뻗어나갑니다.
세계적인 미슐랭 스타 셰프 조엘 로부숑과 파리에서 협업했고,
2023년에는 미국 뉴욕주 하이드파크에 DASSAI BLUE SAKE BREWERY까지 세웠습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사케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지역에서도 밀려나던 작은 주조장에서,
세계가 아는 프리미엄 사케 브랜드가 되기까지는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닌 맛을 즐기는 술을 끝까지 밀어붙인 한 사람의 고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집은 닷사이를 일본 안에 머무는 브랜드가 아니라,
전 세계의 식탁에서 사랑받는 사케로 만들어냈습니다.
일본을 넘어 사케의 세계화를 이끈 브랜드, 닷사이입니다.

 

 

 

 

 

 

 

 

쿠보타(久保田)

쿠보타를 만드는 곳은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의 아사히 주조(朝日酒造)입니다.
(앞서 닷사이를 만들던 곳도 아사히 주조였는데, 한자가 旭와 朝日로 다르고 완전히 별개의 회사입니다.)

아사히 주조는 1830년, 쿠보타야(久保田屋)라는 옥호(屋号/상호명)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메이지 시대부터 아사히야마(朝日山)라는 술을 주력으로 키웠는데,
쿠보타가 만들어지기 전의 아사히야마는 지금 떠올리는 니가타식 깔끔한 술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런 생활 방식에 맞춰
음식도 맛이 진하고 술도 확실한 마실 맛이 있는 농후하고 감칠맛 있는 술이 주류였습니다.

그렇게 농순 우마구치 타입의 아사히야마를 중심으로 성장한 아사히 주조는
쿠보타 개발 직전에는 이미 니가타현 내에서도 최대 규모의 주조장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즉, 쿠보타는 작은 지방 양조장이 갑자기 대박난 스토리는 아닙니다.

1980년대가 되면서 시대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도시에서는 육체노동보다 지식노동의 비중이 커지고,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진한 맛에서 점점 담백한 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을 읽은 사람이 당시 4대 사장 히라사와 토오루(平澤亨)입니다.
그리고 그가 술 만들기를 맡기기 위해 데려온 인물이
니가타현 양조시험장장을 맡고 있던 시마 테이지(嶋悌司)입니다.

히라사와 토오루 사장의 적극적인 요청에
시마 테이지는 안정적인 공직에서 정년까지 마치지 않고,
1984년 아사히 주조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것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공유했던 생각은 명확했습니다.
니가타에서 고품질의 술을 적정한 가격에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호준 우마구치(芳醇旨口)처럼 향과 맛이 풍부하고 진한 술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반대로 가볍고 깔끔하면서 식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탄레이 카라쿠치(淡麗辛口)를 새로운 방향으로 잡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코드네임까지 붙어 있었는데, 바로 '도쿄X'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처음부터 니가타 지역 안에서만 팔 술이 아니라,
도쿄 같은 도시의 소비자들에게도 통하는 새로운 술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용하는 쌀도 니가타에서 탄생한 고햐쿠만고쿠를 선택하고,
니가타의 쌀, 물, 사람으로 새로운 시대의 지자케를 만들자는
ALL 니가타 정신으로 개발을 이어갑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 방식에 익숙한 토우지와 쿠라비토들은
갑자기 전혀 다른 스타일의 술을 만들자고 하니 반발했고,
시마 테이지와 현장 사이에서도 상당한 시행착오가 이어졌습니다.

이런 과정 끝에 완성된 술이 1985년 5월 21일 출시된 쿠보타(久保田)입니다.

'쿠보타'라는 이름은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창업 당시의 옥호였던 '쿠보타야'에서 가져왔습니다.
뿌리로 돌아가되, 술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만든 셈입니다.

이 쿠보타에서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햐쿠주(百寿)와 센쥬(千寿) 두 종류였습니다.
당시에는 오히려 낯설었던 가볍고 깔끔하면서 끝맛이 산뜻하게 떨어지는 스타일이
도시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듬해인 1986년, 상위 라인인 만쥬(萬寿)까지 등장합니다.
이후 쿠보타는 점점 라인업을 넓혀가며 현재는 니혼슈 카테고리만 17종류까지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쿠보타가 남긴 가장 큰 영향은, 단순히 술 하나가 잘 팔렸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당시 니혼슈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였던 탄레이 카라쿠치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니가타 술 = 담백하고 깔끔한 술이라는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쿠보타가 탄레이 카라쿠치를 일본 최초로 발명한 술은 아니지만,
그 스타일을 전국적인 니가타의 이미지로 만들어준 대표 브랜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원하는 맛을 먼저 읽고 아예 술의 방향 자체를 바꿔버린 브랜드, 쿠보타입니다.

 

 

 

 

 

 

 

핫카이산(八海山)

핫카이산을 만드는 곳은 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시의 핫카이 양조(八海醸造)입니다.
영봉이라 불리는 핫카이산(八海山)을 올려다보는 지역에 자리한 양조장입니다.

이 핫카이 양조는 1922년 창업했는데, 쇼와 30년대 초반(1955~1959년)까지도
생산량이 많지 않은 작은 술도가였습니다.

그러다 1953년, 창업자 나구모 코이치(南雲浩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갑작스럽게 후계자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당시 장남은 의사가 되어 이미 집을 떠났고, 차남은 데릴사위로 다른 집에 들어가 있었으며,
셋째도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아 있던 것은 취업을 준비하던 넷째 아들 나구모 카즈오(南雲和雄)였습니다.

그렇게 양조장을 이을 생각이 없었던 카즈오씨가 불과 25살의 나이에
양조장 경영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물려받은 회사의 상태는 제조량은 300석도 되지 않았고,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완전 마이너스 상태였습니다.

공식 자료에서도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바닥에서 시작한 셈입니다.

하지만 나구모 카즈오씨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곁에는 아내 나구모 아이씨가 있었고,
재무를 맡은 동료 도미도코로 요시고로씨,
양조장 전반의 일을 도운 동료 마루야마 타카오씨도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1958년, 토우지(杜氏)로 타카하마 하루오씨까지 합류합니다.
이 사람들이 함께 지금의 핫카이산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회사를 살려낸 방법은 대박 상품 하나로 한 번에 뒤집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1955년부터 양조장을 새로 짓고 설비를 늘리는 한편,
전 국세국 감정관 다나카 테츠로(田中哲郎)에게

양조 지도를 받으며 조금씩 술의 품질을 끌어올려 갔습니다.

이후에도 정미 설비와 양조장을 차근차근 확충했고,
1979년에는 할인 판매까지 폐지한 뒤 그만큼을 좋은 원료와 사람에 다시 투자했습니다.

즉 핫카이산은 한 번의 대박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좋은 술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하나씩 쌓아 올린 경우였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화려한 향이나 강한 맛을 가진 술이 아닌,
식중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담백하고 균형이 잘 잡힌 술이었습니다.
이 방향을 꾸준히 추구해가며 브랜드를 성장시켜왔습니다.

한 사람이 좌절하고 홀로 극복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마이너스 상태에서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긴 투자가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전국적으로 지자케 붐이 일어나면서
니가타의 담려 카라구치 스타일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핫카이산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인기가 급격하게 높아집니다.

여기서 핫카이산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합니다.
당시에는 생산량이 적은 유명 지자케들이 품귀 현상을 일으키면서
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는 경우가 생겨나던 시대였습니다.

실제로 핫카이산 역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어떤 이자카야에서는 다른 술보다 2~3배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생산량은 그대로 두고 희소성을 유지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핫카이산은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술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제조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생산 공정을 합리화하고, 안정적으로 술을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계속 확대해 나갑니다.

핫카이산이 지금도 강조하는 철학은 "더 좋은 술을, 더 많은 사람에게"입니다.

고품질의 술이라고 해서 무조건 소량만 만들고 비싸게 팔기보다는,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핫카이산은 제조사에는 품질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공급에 대한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특히 일상적으로 마시는 술에도 좋은 원료와 기술을 아끼지 않으면서,
높은 품질과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을 함께 가져가려 했습니다.

프리미엄 사케를 소수만 즐기는 특별한 술로 만드는 것보다,
좋은 술을 매일의 식탁 가까이에 두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 선택들이 핫카이산을 잠깐 유행하고 사라지는 브랜드가 아니라,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장수 브랜드로 만든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핫카이산의 술은 화려한 한 병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보다는,
한 잔, 두 잔 계속 마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속 손이 가게 만드는 타입입니다.
술 자체도, 브랜드가 걸어온 방식도 오래 곁에 남을 수 있는 쪽을 선택해온 셈입니다.

특별한 소수만을 위한 술이 아니라,
좋은 술을 더 많은 사람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고 싶었던 브랜드.

핫카이산만의 이런 철학을 고집 있게 이어왔기 때문에
지금은 일본의 이자카야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고,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서도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의 핫카이산이 되었습니다.

댓글